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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생각 2020. 9. 3. 21:13
안녕하세요. 벌써 열 한번째 글이군요. 이번에는 저번 시간 마지막에 예고한대로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알려지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해요.
사진 출처 - 네이버 철학 사전 우선 말을 하기 앞서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볼게요. 소크라테스는 우선 철학을 전개함에 있어서 주로 대화를 통하였지 저술은 거의 하지 않았어요. 대신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이 후에 소크라테스와의 일들을 모두 책으로 적었기 때문에 우리가 대체적으로 아는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은 모두 플라톤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어요.
이 글을 읽으신다면 많은 분들께서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이라는 것을 들어보셨을 거에요. 이는 무엇이냐 하면 다른 사람과 대화함에 있어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이 아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꼬리를 물며 질문을 해나가는 대화 방법이에요.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이 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계속 질문하여 답을 못할때까지 질문을 이어나갑니다. 그렇게 질문을 이어나가면 결국 어느 순간에는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사람이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실제로는 모르고 있었다고 깨닫게 해주는 것이죠.
그 예시로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있습니다.
출처 - 국가 ( 플라톤 저서 ) 위 대화처럼 상대방이 아는 것에 대해 답을 못할 때까지 질문을 이어나가 상대방이 실제로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위 대화법으로 마을의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대화합니다. 그리고는 찾아간 사람들 모두 결국 자신들이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답을 못하자,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점에서 다른 지혜로운 사람들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앎은 우선적으로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이죠.
소크라테스의 명언이라고 하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너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존재라는 것을 너가 알라는 말이지요. 우리의 앎은 일단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그 점을 알지 못하면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에 의해 우리는 결국 지혜롭지 못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 우리의 행동이 과연 지혜로운 행동인가에 대해 판단할 경우에도 우리의 행동이 우리가 확실히 안다고 하는 사실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함에 있어 나타난 것인가를 확인함으로써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이번 글은 이 정도로 하고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글에는 위 논리를 통해 알 수 있는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게요. 지금까지 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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